[이코리아]우리나라 산림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곱게 차려입는 가을이 찾아왔다. 우리나라에서 단풍이 일찍 찾아오는 설악산은 첫 단풍이 지난 10월 4일 시작되었다. 그 어느 해보다 더위가 늦게까지 기승을 부려서인지 올해 단풍은 평년보다 약 일주일 정도 늦은 것이라고 한다.
단풍은 슬롯가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잎 내에서 녹색을 띠는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그 뒤에 가려져 있던 카로틴이나 크산토필 등의 색소가 드러나는 현상이다. 단풍색은 보통 붉은색, 노란색, 갈색 3가지로 구분되는데, 그 중에서도 붉은색으로 물드는 단풍은 한여름의 푸른 잎과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우리나라 산림을 붉게 물들이는 대표적인 슬롯가 있는데, 바로 오늘 소개할 붉슬롯이다.
붉슬롯라는 이름은 잎이 붉게 물드는 슬롯라는 뜻의 이름이다. 가을이 되면 어느 슬롯보다 먼저 우리 숲을 붉게 물들이는 매력적인 슬롯이다. 붉슬롯는 여러 개의 작은잎이 모여 깃꼴형태의 겹잎을 이루는데, 엽축에 날개가 발달하는 재미있는 특징이 있다.
붉슬롯의 다른 이름은 오배자슬롯이다. 붉슬롯의 엽축에는 오배자면충이 기생하여 괴상한 모양의 벌레집을 만드는데 그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처음의 다섯 배가 된다하여 그 벌레집을 오배자(五倍子)라고 부르며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붉슬롯 열매는 작은 열매가 모여 포도송이같이 달린다. 열매의 겉 표면에는 하얀 물질로 덮여 있는데, 그 물질에는 짠맛과 신맛이 나기 때문에 소금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붉슬롯는 스치기만 해도 알레르기 반응인 옻이 오르는 ‘옻슬롯’와 같은 종류의 슬롯지만 독성이 약해 옻슬롯과 중에서는 가장 덜 위험한 슬롯이다.
붉슬롯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독성이 비교적 강한 개옻슬롯가 있다. 개옻슬롯라는 이름은 옻슬롯와 유사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개옻슬롯도 우리나라 가을 산을 붉게 물들여주는 슬롯이다. 개옻슬롯는 단풍이 들기 전에도 잎자루가 진한 붉은색을 띠고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숲에서 만나는 개옻슬롯는 슬롯의 크기가 보통 사람 키의 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필자가 대학생 때 등산로에 있는 개옻슬롯에 살짝 스치고 며칠을 피부에 옻이 올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앞선 붉슬롯에 비해 개옻슬롯는 독성이 비교적 강해서 알레르기에 약한 분들은 산행할 때 주의가 필요한 슬롯이다. 개옻슬롯의 잎이나 가지를 자르면 독성이 강한 하얀 슬롯진이 나온다.
붉슬롯, 개옻슬롯보다 독성이 강한 옻슬롯가 있다. 옻슬롯라는 이름은 슬롯에서 나오는 수액을 ‘옻’이라 하여 옻을 채취하는 슬롯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옻슬롯는 전통 옻칠의 원료, 약재로 중국에서 도입한 슬롯이다.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시대 이전에도 우리나라에 옻칠문화가 있던 것으로 볼 때 그 이전에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옻을 만드는 슬롯라는 뜻에서 다른 옻슬롯류와 구분되기 위해 흔히 ‘참옻슬롯’라고 부르기도 한다. 옻슬롯는 전통 옻칠의 원료로도 사용되지만 새순과 줄기는 귀한 식재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붉슬롯, 개옻슬롯, 옻슬롯는 가을의 산을 붉게 수놓는 귀한 우리슬롯이다.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독성이 있는 슬롯지만 잘 쓰면 약이 되는 유용한 슬롯이다. 특히, 옻슬롯는 따듯한 성질로 위와 장을 편안히 해 소화를 돕고, 혈관을 넓혀 뭉친 피를 풀어주는 등 유용한 성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옻슬롯의 역사성과 잠재적 가치를 밝히고 우리나라의 소중한 생명자원으로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을의 우리 산을 붉은빛으로 물들여주는 붉슬롯 3형제를 만난다면 고마운 마음을 담아 정성어린 응원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임효인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