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우유나 주스를 담는 슬롯 머신의 재활용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슬롯 머신 중에서 점점 비중이 늘고 있는 멸균팩 때문인데,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2년 32%에 달하던 슬롯 머신 재활용률은 2022년에는 13.4%로 10년 새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슬롯 머신 재활용률이 낮아지는 이유는 멸균팩 증가가 원인이다.
멸균팩은 알루미늄박이 포함된 슬롯 머신이다.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슬롯 머신은 분리수거 품목 중 '골판지 외 종이류'에 포함된다. 지난 2022년 정부는 슬롯 머신 분리배출 표시를 일반팩과 멸균팩으로 변경하고 두 품목을 따로 배출하도록 했다. 지난해 환경부 지침에 따라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붙기 시작했다.
실제 전체 슬롯 머신 중 멸균팩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25%에서 2023년 46.4%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의 자료에 따르면 멸균팩 비중이 2025년 51.3%로 절반을 넘어선 뒤 2027년에는 56.1%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공제조합은 최근 연구 보고서를 통해 △공동주택은 슬롯 머신 전용수거함 보급 확대 △단독주택은 폐지와 슬롯 머신 분리 정책 수립 △카페는 슬롯 머신 거점 회수장소 통한 분리배출, 슬롯 머신 회수 전용 비닐백 보급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슬롯 머신 분리배출이 확대될 경우 공제조합은 현재 재활용률 13.2%에서 2026년에는 31.5%, 2029년에는 46.3%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초록열매 슬롯 머신 컬렉티브가 지난 7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멸균팩 사용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수선별 뿐 아니라 일반팩에 비해 멸균팩 재활용 기술제품 개발 역시 미비한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멸균팩과 일반팩은 소재에 차이가 있으므로 멸균팩이 일반팩 재슬롯 머신 공정에 혼입되면 일반팩의 백색펄프를 이용하는 재생화장지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 폐지에 혼입되어 골판지로 생산되는 멸균팩이 상당량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이는 멸균팩의 재생자원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면서 "멸균팩 사용량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슬롯 머신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생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제고된 다양한 재슬롯 머신 기술과 제품 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이미 건축자재, 소각하여 열 회수, 폴리알(PolyAl) 혹은 플라스틱 재생 원료와 이를 이용한 제품 생산까지 가능한 기술과 제품이 개발되어 유통되고 있다. 지난 2018년에 설립된 EXTR:ACT는 슬롯 머신 및 종이 포장재들의 재활용 촉진에 앞장서는 유럽 플랫폼이다. 이를 통해 슬롯 머신 중 비섬유 재질을 연간 약 5만 톤을 재활용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이탈리아의 Ecoplasteam(재활용 공장),독일의 Palurec(폐 멸균팩을 선별, 압출해 알루미늄 등 2차원료로 재활용) 등이다. 독일이나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은 2014년 기준 이미 슬롯 머신 평균 재활용률이 70%대였는데, 이들 국가들은 상온유통체계가 발달한 것이 이유로 풀이된다.
국내도 최근 멸균팩 재활용 문제가 심각해지자 멸균팩 재활용 기술·제품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정식품사의 베지밀 검은콩 두유 고칼슘 포장재는 멸균팩을 4% 이상 투입해 재활용한 종이상자다. 자연드림사는 슬롯 머신을 100% 활용해 만든 건축판넬 생산도 시도 중이다. 그러나 아직 그 양이 미미하므로 슬롯 머신 재활용률을 높이려면 더 다양한 기술과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5일 서울 국회도서관 소희의실에서 '초록열매 슬롯 머신 컬렉티브-슬롯 머신 자원순환 제도 개선 토론회'가 열려 슬롯 머신 자원순환과 관련한 제도들을 점검하고 제도 개선에 관한 방안이 논의됐다. 이날 토론회는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과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주최·주관하고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했다.
(재)숲과나눔은 지난해부터 사랑의열매 후원으로 6개 파트너 단체(기후변화행동연구소,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 유어스텝, 소비자기후행동,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사회적협동조합)와 '초록열매 슬롯 머신 컬렉티브'를 구성하고 슬롯 머신 자원순환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여러 환경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관련업계와 주무부처인 환경부도 슬롯 머신 자원순환 제도의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지자체의 슬롯 머신 수거 의무 강화를 높이기 위해 ‘주민 1인당 재활용 가능자원(전지류, 슬롯 머신, 투명 페트병) 분리수거량’ 평가방식 개선 제안에 대해서는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통해 2026년부터 반영하겠다고 답변했다.
또그동안 종이류로 제한해온 슬롯 머신 재활용 인정 범위를 확대해 멸균팩을 건축자재 등으로 재활용하도록 관련 규칙을 개정할 예정이다.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시제도 개선 요구에 대해서는 시민들에게 혼선을 야기할 수 있는 문구 개선, 생산업체가 역회수 등 재활용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토론의 좌장을 맡은 장재연 숲과나눔 이사장은 "환경부가 시민들의 정책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면서도 "그러나 슬롯 머신 별도 수거품목으로 지정 제안에 미온적 답변을 보인 건 무척 아쉽다. 숲과나눔·사랑의열매가 준비하고 있는 지자체 단위 슬롯 머신 자원순환 모델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환경부의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소희 의원은 "자원 낭비와 환경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는 슬롯 머신 문제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오늘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정부, 지자체, 기업, 시민사회의 협력을 도모하고, 슬롯 머신 자원순환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