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기후바카라’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재계도 기후바카라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스코프(Scope) 3’ 배출량을 바카라에 포함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어 논의가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기후바카라는 재무지표뿐만 기업의 경영활동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리스크, 온실가스 배출량, 기후변화 대응 및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노력 등 기후 관련 비재무적 지표까지 함께 바카라하는 것을 말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기후바카라는 단순한 제안을 넘어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이 설립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지난해 6월 IFRS 지속가능성 바카라기준 최종안을 발표하고 2025년부터 기후바카라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규모 및 이를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부터, 기업의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반대로 기후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리스크 등이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춰 기후바카라 기준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실제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지난 4월 지속가능성 바카라 기준 초안을 발표한 뒤,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기업들이 기후바카라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세부적인 기준에 대해서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업들은 스코프 3 배출량을 기후바카라에 포함시키는 것이 시기상조라며 한목소리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기업의 탄소 배출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스코프 1’이 기업이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뜻한다면 스코프 2는 기업이 구매한 전기·에너지 등의 생산과정에서 간접벅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말한다.
스코프 3은 기업 자체를 넘어 기업의 제품·서비스가 생산·소비되는 전 과정에서 발생한 배출량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공급업체로부터 원재료를 구매·운송·소비하고 이를 통해 상품을 만들면서 발생한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은 물론, 직원이 업무를 위해 출퇴근 및 출장하는 과정, 소비자가 제품·서비스를 운송받아 이용·폐기하는 과정 등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전체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스코프 3에 포함된다.
문제는 국내 기업들의 기후바카라 준비도 아직 부족한 상태라는 점이다. ESG행복경제연구소가 지난 2022년 11월 국내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스코프 3 관련 항목을 바카라한 기업은 70곳(35%)에 불과했다.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에 따르면, CDP에 기후 관련 정보를 바카라한 1만8500개 기업 중 스코프 3 관련 항목을 공개한 곳은 7000곳(37.8%)이었는데 호주(80%), EU(71%) 등은 바카라율이 상당히 높았다.
이처럼 스코프 3 바카라 대비가 부실하다보니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사협의회 등 경제단체가 자산 2조원 이상 12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국내 ESG 바카라제도 관련 기업의견’을 조사한 결과, 스코프 3 바카라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56%였으며 유예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40%였다. 반면, 바카라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1.6%에 불과했다.
기업은 스코프 3 배출량 바카라가 의무화될 경우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지난 19일 금융위원회 주최로 열린 ‘지속가능성 바카라기준 기업간담회’에 참석한 기업들은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 바카라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통일된 기준이 아직 없으며 주요국 중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 바카라를 요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유예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실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3월 채택한 기후바카라 기준 최종안에는 스코프 3 배출량 바카라가 제외됐다. 스코프 1·2 또한 규모가 큰 기업에 한해 바카라하도록 했으며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바카라 의무를 면제했다. 기업이 직접 통제하기 어려운 스코프 3 바카라가 포함될 경우 경영부담이 가중된다는 불만을 반영한 타협안인 셈이다.
반면, 기후단체 등은 스코프 3 바카라 의무화가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개혁연구소, 그린피스, 녹색전환연구소,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및 더불어민주당 기후행동의원모임 ‘비상’은 지난 2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적어도 오는 2026년까지는 기후바카라를 의무화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후바카라 의무화 로드맵에 ▲2026년(회계연도 2025년) 의무 바카라 시행 ▲자산 2조원 이상 사업보고서 제출법인부터 바카라 의무화 대상 점진적 확대 ▲법정 바카라(사업보고서에 포함) ▲스코프 3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의무 바카라 등의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동 성명문에서 “스코프 3 온실가스 배출량은 기업 배출량의 평균 ¾ 이상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양적으로 중대한 만큼, 전후방 가치사슬에서의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부과할 필요가 있다”라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어떤 활동에 집중되는지를 투자자가 이해하고 의사결정하기 위해서도 스코프 3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19일 열린 기업간담회에서 “지속가능성 바카라제도는 기후변화 상황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기업을 지원하는 첫걸음”이라며 “(기업들이 제시한) 의견과 관련해, 정책목표 달성을 저해하지 않고 기업의 수용가능성을 제고할 부분이 있는지 보다 면밀히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스코프 3 바카라 의무화와 관련한 이견을 어떻게 조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